[시편 11편]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피할 곳
- Dana Park
- Dec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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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편 11편의 제목은 3절 그 자체이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은 무엇을 하랴?”
“터”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두 단어들이 통용된다. 하나는 ‘샤트’, 다른 하나는 ‘요소드’이다. ‘샤트’는 고대 히브리어의 “터”이고, ‘요소드’는 현대 히브리어의 “터”이다. 이 둘은 같은 의미로서 “기초(foundation)” 또는 “시작의 원리, 정해진 법규, 확립된 시스템” 등을 총칭해서 ”터“라고 한다. 즉 ”터“란 삶의 기초요, 생의 기반이요, 행복의 초석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 터가 가정이다. 어떤 이에게는 관계다. 어떤 이에게는 직장이다. 비록 저마다의 터들이 제각기 다르다할지라도, 터는 매우 그리고 심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살다보면, 그렇게 굳게 믿고 의지했던 그 터가 흔들릴 때가 있다. 심지어 무너져 내릴 때도 있다.
터가 무너지는 순간, 시인은 놀라운 깨달음을 얻는다. 그 순간 의인과 악인이 뚜렷이 판가름 나더라는 점이다(3절). “터가 무너지면 의인은 무엇을 하랴?” 즉 시인은 터가 무너질 때, 의인이 피하는 곳과 악인이 피하는 곳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1절).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그렇다. 터가 무너지는 순간, 의인이 피하는 곳은 여호와 하나님이다. 반면 악인이 피하는 곳은 산이다. 그런데 여호와께 피하는 의인에게 악인들이 장악한 세상은 자꾸만 산으로 도피하라고 유혹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나님과 대조를 이루는 ‘각양의 인간적인 방편들’이다. 인간 세상에서 인간의 방편들이 뭐 그리 나쁘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터가 무너지는 순간, 그 산도 무너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생각해 보라! 땅의 터가 무너질 때, 과연 유일하게 건재하시는 분이 누구겠는가? 그 분은 처음 그 터를 조성하셨던, 바로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뿐이시다(4절).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이처럼 터가 무너질 때, 의인됨이 확연히 드러난다. 하나님을 믿는 의인은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께 피하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그 곳만이 실시간 그 분의 보호하심이 있고, 가장 안전함과 평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낡은 집 서까래처럼 이 땅의 터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땅의 터는 다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러나 하늘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시인은 진지하게 질문한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은 무엇을 하랴?” 당연히 하나님께 피해야 한다. 그 사람이 의인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