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편]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
- Dana Park
- Dec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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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편의 역사적인 배경은 표제어에 나와 있듯이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이다. 등잔 밑이 가장 어둡듯이, 사랑하고 믿었던 아들이 반역을 일으켰다. 다윗은 속수무책으로 아들에게 당하고 만다. 그래서 압살롬과 그의 세력을 피해 다윗은 피난길에 오른다. 그는 맨발로 울면서 감람산을 오르고 있다(삼하 15~17장). 바로 이 때에 그가 기도하며 지은 시가 시편 3편이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다윗의 대적이 많은 것을 보니 민심과 전세(戰勢)는 이미 압살롬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이다. 게다가 이번만큼은 천하의 다윗이라도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조롱담은 여론마저 팽배하다. 즉 현재의 데이터와 프로테이지는 모두 압살롬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모든 상황과 형편은 다윗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이미 승부는 압살롬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다윗이 누구인가? 그는 수천 번의 전투를 치렀던 배타랑 경험자로서 승부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전문가이다. 다윗 역시 압살롬이 승기를 잡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 더군다나 기울어진 민심과 전세에 주눅 들지 않고, 또한 현재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는 데이터와 프로테이지에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기도한다.
다윗이 이렇게 당당하게 기도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구원은 여호와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의 경우, 떡 줄 사람은 생각지 않고 김치 국부터 마시는 격이 아니었다. 그는 떡줄 분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구원이 누구로부터 임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구원은 민심이나 전투력이나 데이터나 프로테이지나 심지어 여론으로부터 임하는 것이 아님을 다윗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고, 다윗은 그렇게 기도한다. 결국 그가 믿고 기도한대로 되어 버린다. 압살롬의 세력은 불이 사그라져서 재가 되듯이 소멸하고, 다윗은 다시 환궁하여 왕권을 되찾는다(삼하 19장).
유리한 상황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불리한 상황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 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 다윗처럼 이 믿음을 가져보자. 그리고 이 믿음대로 기도해 보자. 그리하여 상황을 능히 이기시는 그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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