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9편] ‘버림’이 곧 ‘살림’이다!
- Dana Park
- Mar 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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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9편에서 다윗 안에 하나님이 완전히 바뀐다: 공중 대표기도 속의 하나님에서 ‘개인 실존기도 속의 하나님’으로, 신앙 서적 속의 그들의 하나님에서 ‘일기장 속의 내 하나님’으로, 멀리 계신 하나님에서 ‘내 안의 하나님’으로 탈바꿈한다(1, 9~10, 16~17절).
나의 하나님(엘로하이)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나의 하나님(엘로하이)이 그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가 보게 하시리이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다윗이 <엘로하이!> 곧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게 된 계기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철저한 ‘버림받음’에서이다. 시편 59편의 표제는 이를 분명하게 밝힌다: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자, 이스라엘 세간에는 “사울 왕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요” 라는 유행가가 퍼진다. 그때부터 시기심이 발동한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일 기회만 노린다. 사울의 둘째 딸 미갈과의 혼사 제안도 다윗을 죽일 일종의 음모였다. 그 혼사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다윗은 블레셋 군대에 들어가야 했고, 거기서 죽음을 불사하며 처절하게 싸워야 했다. 미갈과 혼인을 맺어 왕의 사위를 삼은 것도 미갈의 집에 다윗을 묶어두려는 사울의 속셈이었다. 다윗이 미갈의 침실에 머문 바로 그날, 사울은 자객들을 보내어 다윗을 암살하려했다(삼상 18~19장). 이때 지은 시(詩)가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엘로하이!) 나의 하나님(엘로하이!)”이라고 절규했던 시편 59편인 것이다.
이렇듯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사실 다윗은 사울에게 그럴만한 아무런 허물이 없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이 그렇게 허락하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다윗 자신과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림받게 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으셨다. 그때 예수님이 드렸던 기도는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이다(막 15:34절). 하나님의 버리심은 예수님을 통한 살리심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간으로부터 버림받게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게 하신다. 그뿐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을 되찾아 새롭게 만나게 하신다. 그것이 바로 다윗과 예수님의 기도, 곧 “나의 하나님!”의 절규다.
다윗의 기도나 예수님의 기도는 전혀 다르지 않다. 둘 다 ‘나의 하나님!’의 기도이다. 단지 히브리어 ‘엘로하이’와 아람어 ‘엘로이’로서 약간 다를 뿐, 그 호칭은 똑같다.
그렇다! ‘버림받음’이란? 나의 자아가 버려지는 대신에, 나의 하나님을 되찾는다. 결코 손해가 아니다. 오히려 큰 이익이다. 구원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버림’은 ‘살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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