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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편] 병상에서의 기도

시편 6편은 “병상 중에 드리는 기도”로 잘 알려져 있다. 시편의 시인은 복합적인 약함에 시달리고 있다. 2절에 보면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나의 뼈가 떨리오니”, 육체적인 약함을 말합니다. 게다가 3절에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라고 합니다. 정신적인 약함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영적인 깊은 침체에 접어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상태를 “복합적인 유약함”이라 부른다.


그런데 1절에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라고 간구하는 것을 볼 때, 시편의 시인은 주의 분노와 진노로 자신이 질병에 걸리지는 않았는가? 라고 자책하고 있다. 아마도 병세가 길어지다 보니 스스로 자책함으로 깊은 침체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약하다. 그래서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다. 시편 6편은 그 병상에서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여 회복할 수 있는지를 잘 알려 준다.

병상에서 첫 번째 기도는 “여호와여!”라고 부르면서 주님을 찾는 일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치유 방법은 병원이든, 의사를 통해서든, 약을 통해서든, 기도를 통해서든, 자연적인 치유든, 다양한 양태를 포함한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모든 형태가 “하나님에 의한 신비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이 중요하다.


“비합리적인 것”과 “초합리적인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의 큰 차이가 있다. “비합리적인 것”에 근거한 치료행위는 말 그대로 합리적인 부분이 완전히 빠진 것이다. 즉 의술의 도움이나 과학적인 힘을 완전히 배제한 채, 미신에 근접한 치료행위를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초합리적인 질서에 근거한 치료는 현대의학을 최대한 동원하면서도 그것만을 맹신하지 않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시편 6편의 시인은 초합리적인 질서를 통하여 치유를 기도한다. 그는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고치소서,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무려 네 번씩이나 간구하고 있다(2~4절). 그는 인간의 생명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주어지는지 분명히 알고 있고, 주님은 단순히 명의(名醫)가 아니라 생명과 부활 그 자체이심을 믿고 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여호와여!”라고 계속해서 부르고 또 부르며 간구하고 있다.

병상에서 두 번째 기도는 눈물의 호소이다.

6절에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그리고 8절에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라고 기도한다.


“울음소리를 들으셨도다”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히브리식 표현을 직역하면 ‘흐르는 눈물의 외침’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눈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그런데 시인은 ‘눈물의 외침을 들으셨도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 어쩌면 외치는 소리 없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눈물에는 포함되어 있다. 해 아래 모든 언어를 달리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통할 수 있는 언어가 눈물이다. 동시에 하늘에서도 이해될 수 있는 언어가 눈물이다. 왜냐하면 눈물은 어떤 웅변보다도 더 힘 있는 호소력을 갖고 있고, 통역도 필요하지 않으며, 모두가 알아듣는 말이기 때문이다. 말이 그 한계를 절감할 때 눈물의 호소를 하나님께서 수납하신다. 흔히들 찬송을 “곡조를 가진 기도”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눈물은 “액체로 화한 기도”이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눈물로 드려지는 기도는 돌 같은 심령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하나님은 그런 액상의 기도를 들으시고 치유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시인은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9절)” 라고 회복됨을 고백한다.


병상의 기도는 예수님이 “생명”, “부활” 그 자체이심을 믿고 간구하는 초합리적인 울부짖음이다. 또한 이 기도는 흐르는 눈물의 호소요, 액체로 화한 기도이다. 그러므로 초합리적인 신비(치유와 회복)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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