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편] 약자의 하나님
- Dana Park
- Dec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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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편의 시인은 아주 은혜 충만한 찬양으로 이 시를 시작하고 있다(1~2절).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시인은 “내가 ~하리이다(I will)”라는 틀 안에 다섯 개의 단어들을 연속 사용하여 마음의 감격을 표현하고 있다: ①“감사하리이다”, ②“전하리이다”, ③“기뻐하리이다”, ④“즐거워하리이다”, ⑤“찬송하리이다.”
시인이 은혜 충만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어지는 내용은 그 이유를 잘 설명한다(4절).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재판을 통해 억울함이 완전히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너무나 지혜롭고 의롭고 현명한 재판장을 만나서 가슴에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이 완전히 풀리고 갖은 오명과 누명을 깨끗하게 해결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재판장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시인은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매우 특별하시다고 자세히 소개한다(9절, 12절, 18절).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무죄한 피를 갚으시는 분께서 그들을 잊지 아니하시고 불쌍한 이의 울부짖음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신다(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에는 다섯 부류의 약자들이 등장한다: ① 압제를 당하는 자, ② 환난 당하는 자, ③ 무죄한 피를 흘리는 자, ④ 가난한 자, ⑤ 궁핍한 자
시인이 신이 났던 이유는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약자들의 억울함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셨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소위 인맥이라 불리는 줄과 백, 그리고 돈과 권력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약자의 위치에 놓인다. 약자들은 관심 대상이 아니라 소외 대상으로서 이들의 억울함은 잘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약자들의 억울함을 변호해 주시고 돌보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약자의 하나님>이시다. 시인은 바로 그 하나님을 믿고, 그 분께 기도한다(13~14절).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약자이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약자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약자일수록 약자의 하나님을 더욱 굳게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인맥, 돈, 권력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훨씬 더 역사하는 힘이 크다. 그래서 약자의 억울함이 풀리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약자를 위해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고 매우 역설적인 고백을 하였다(고후 12:10절). 그렇다, 약함이 늘 불리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약함은 곧 강함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약함과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앞서, 약자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견실한지부터 살펴야 한다. 약자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약함은 더 이상 문제 될 것이 없다. 오히려 그 분을 향한 믿음 약함이 문제일 뿐이다. 약자의 하나님을 굳게 믿어 약함이 곧 강함이기를 소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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