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earch

[욥기 33장] 겨울 산의 지혜

지금까지 욥의 세 친구들(엘리바스-빌닷-소발)은 욥의 고난에 대하여 죄의 인과응보라고 주장했다. 즉 죄의 결과로 고난당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엘리후는 그러한 세 친구들의 주장을 보완해주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19~22절, 새번역).


“하나님은 사람에게 질병을 보내셔서 잘못을 고쳐 주기도 하시고, 사람의 육체를 고통스럽게 해서라도 잘못을 고쳐 주기도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병든 사람은 입맛을 잃을 것입니다. 좋은 음식을 보고도 구역질만 할 것입니다. 살이 빠져 몸이 바짝 마르고, 전에 보이지 않던 앙상한 뼈만 두드러질 것입니다. 이제, 그의 목숨은 무덤에 다가서고, 그의 생명은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천사 천 명 가운데서 한 명이 그를 도우러 올 것입니다. 그 천사는 사람들에게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상기시킬 것입니다.”


엘리후의 관점이 무엇인가? 욥이 당하는 고통은 ‘하나님께서 욥을 고쳐나가시는 하나님만의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서 주장했던 욥의 세 친구들의 견해보다 훨씬 진일보한 지혜임에 틀림없다.

고난이 주는 유익은 다른 어떤 것보다 <자기의 본래성>을 되찾게 한다. 가령 그렇게 건강해서 자기 마음대로 막 돌아다니던 사람이 질병에 걸려 병상에 눕게 되면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유약하며, 유한한 존재인 것을 제대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겨울 산을 좋아한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산은 낙엽으로 덮여서 산의 본래성을 찾지 못하지만, 낙엽이 다 져버린 앙상한 그 자태가 비로소 진정한 산의 본래성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약함과 고난과 고통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루심, 혹은 특별관리 라고나 할까, 혹은 삶의 가지치기의 일종이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본래성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영원히 강하거나 건재하거나 건강하지 못하며, 또한 영원히 살지 못하는 유한하고 무력한 존재라는 본래성을 고난이라는 <인생의 겨울 산>에서 비로소 발견한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 인간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봄과 여름과 가을을 제각기 다 겪게 하신다. 그러다가 어느 듯 생각지도 않은 겨울도 겪게 하신다. 욥은 지금 한 겨울에 파묻혀 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저주도, 심판도, 죄의 결과도 아닌, 우리의 인생을 고쳐나가시는 하나님의 지혜인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인간 본연의 본래성을 되찾고, 영원하신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다.

욥기는 우리에게 예상치 않은 인생의 겨울을 통하여 하나님만을 경외하게끔 그 지혜를 일깨워준다. 지금 인생의 어느 계절에 들어서 있는가? 행여 겨울의 문턱에 이르렀다할지라도 걱정하지 마시라.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지혜의 중심부에 진입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끄시는 지혜로 깊이 나아가서 영원하신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아멘.

 
 
 

Comments


Untitled%20design_edited.png
율촌한인교회
    

ewellkoreanchurch@gmail.com

Ewell United Reformed Church
London Rd, Ewell, Epsom,
KT17 2BE

 
하나님을 예배하는 양무리
Ewell korean church
  

©2021 by Ewell Korean Church.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