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4장] 차가운 논쟁자가 아닌 따뜻한 이해자 되라
- Dana Park
- Nov 29, 2021
- 2 min read
욥기는 인간들의 수많은 논쟁들을 담고 있다. 또한 그 논쟁들을 통해 진리가 온전히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보충해주기도 한다.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인 욥기가 고작 인간들의 논쟁들을 다루는 책이냐 라고 비하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신령한 것이 일상을 배제시키거나 현실에서 벗어나게 되면, 오히려 무익한 추상으로 전락하거나 위험한 신비주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욥기 34장에서 엘리후의 논쟁 사안은 욥기의 독자들을 적지 않게 실망시킨다. 그것은 그의 지적 수준이 낮다거나 타고난 언변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엘리후는 똑똑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그의 논쟁 방식에 있다.
그는 지금까지 욥이 주장했던 내용을 토대로 논쟁을 시작하려 한다(3~4절).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엘리후는 논쟁을 통해서 진리를 세워보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욥기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인간들끼리 세우는 진리가 과연 얼마나 진리다운 진리일까?’ 라는 전제를 항상 깔고 있다. 그러니까 그 논쟁 자체에 너무 목숨 걸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방식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논쟁에서 밀리면 자존심을 내세우게 되고, 감정을 표출하게 되고, 심지어 거짓말과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고 한다. 왜냐하면 진리를 세우는 공적인 대의(大義)보다 일단 논쟁에 승리해야 한다는 사적인 쟁점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논쟁이 끝나면 후유증이 적지 않게 따르는 것이다.
욥의 발언에 대하여 엘리후는 3가지로 요약한다(5~9절): “욥이 말하기를 1)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2)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3)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이 내용은 욥의 실제 발언에 대한 과장과 비약이 곁들어진 엘리후의 확대해석 및 일반화이다. 엘리후의 문제는 무엇인가? 엘리후는 논쟁을 통해서 진리에 접근하기보다는 일단 욥을 제압하고, 욥의 친구들을 제압하여 자신이 승자가 되려는 것에 있다. 즉 논쟁을 통해 진리를 세우기보다 논쟁 자체에서 승리하려는데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욥기가 말하려는 것은 누구의 주장이 맞느냐? 틀리느냐? 가 일차적인 관심사가 아니다. 만일 그것이 일차적이라면 욥의 친구들이나 엘리후가 등장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시는 것이 맞다. 그런데 하나님은 38장에서야 드디어 등장하신다. 그런 것을 보면 신학적인 논쟁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 지금까지 욥의 세 친구도 그러했고, 지금 엘리후도 그러하다. 그것은 차갑고 냉정한 신학적인 교리보다 따뜻하고 온화한 이해를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신학적인 논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얼마나 따뜻하게 서로를 상대해주고, 얼마나 서로를 이해해 주느냐에 우선된 관심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논쟁에서 승리하느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논쟁하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와 관심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더욱 마음을 두신다. 즉 차가운 논쟁자가 아니라 따뜻한 이해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