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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5장] 생명은 차가움이 아니라 따스한 온기로 깨어난다

엘리후는 자기 지식으로 하나님을 소개한다(5~8절 새번역): “욥 어른은 하늘을 보시기 바랍니다. 구름이 얼마나 높이 있습니까? 비록 욥 어른께서 죄를 지었다고 한들 하나님께 무슨 손해가 가며, 어른의 죄악이 크다고 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미치겠습니까? 또 욥 어른께서 의로운 일을 하셨다고 한들 하나님께 무슨 보탬이 되며, 하나님이 어른에게서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욥 어른께서 죄를 지었다고 해도, 어른과 다름없는 사람에게나 손해를 입히며, 욥 어른께서 의로운 일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다만, 사람에게나 영향을 미칠 뿐입니다.”


한마디로 ‘교과서적인 하나님’, 즉 객관적이고 냉정한 신의 모습으로 그린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은 의로운 초월자이시며, 절대적인 자유자이시다’라는 것이다. 여기에 엘리후의 신학이 드러난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오류가 없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사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분이시다. 그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가 하시는 일은 다 의롭다고 믿는다. 대단한 믿음과 확신 같지만, 문제는 그의 신학에 인간의 아픔에 대한 공감의 여백이 없다는 점이다. 엘리후는 차가운 신학의 자리에 서서 고난이라는 질퍽한 진흙구덩이에 던져진 욥을 향하여 냉철하게 가르치며 훈계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욥의 고난에 대해서는 실제로 하나님도, 그리고 그 자신도 공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철학자 파스칼이 자주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 혹은 ‘원리로서의 하나님’이신가? 그렇지 않다. 성경의 하나님은 다르다. 그 분은 인간의 희로애락에 깊이 연루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완결된 존재로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분이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의 기쁨과 슬픔에 주체적으로 동참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물론 초월자이시며 절대적인 주권을 지니신 의로운 분이시다. 그래서 인간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고, 때로는 거듭되는 인간의 죄 때문에 넌더리를 내기도 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짝을 이룬다. 화를 내시다가도, 이내 용서해버리신다. 그 분은 초월자이시지만, 이내 인간 역사에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개입하신다. 그 분은 절대적인 자유를 행사하시다가도, 이내 인간을 위해서 그것을 쉽게 철회해 버리신다. 즉 자녀를 위한 부모처럼 당신의 자유를 극히 제한시켜 버리신다. 이렇듯 인간 편에서 그 하나님을 정의하기란 너무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통틀어서 부르기를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정말 문자 그대로 ‘은혜’로서 정의할 수밖에 없다.

엘리후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참 단순한 곳이다. 선과 악이 분명하고, 미와 추가 분명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선한 사람이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악한 사람이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또 선과 악이 두부 모 가르듯 분명하게 갈라지지 않을 때도 많다. 예수님은 그런 세상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가지고 세상을 설명하신다. 밭에 난 가라지를 보면서 일꾼들이 주인에게 묻는다.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버릴까요?" 그러자 주인은 대답한다.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가라지와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정말이지 하나님은 은혜를 기반 하여 자상하고 세심하게 인생을 다루시는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억울한 자가 다가가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신다. 세상살이에 지친 자가 찾아가 맘껏 울 수 있는 골방이시다. 인간의 악다구니를 들으면서도 그의 아픔까지도 헤아리시며 눈물지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의 풍파가 닿을 수 없는, 저 너머, 절대의 세계에 머물고 계신 초월자가 아니라 끝없이 우리의 삶 가운데로, 그것도 은혜를 기반삼아 개입해 들어오시는 아버지이시다. 그 분은 죄의 파도에 떠밀려 저만치 죽음으로 내몰린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이 세상으로 선물해 주신 키다리 아저씨 같은 분이시다.

엘리후는 차가운 신학으로 그려진 냉정한 하나님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어느 생명도 차가움 속에서는 깨어날 수 없다. 실제로 우리 하나님은 따스한 은혜의 온기로서 우리 인간을 탄생시키시는 정말 인간미 넘치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며 섬김으로 날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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