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8~41장] 우주의 중심
- Dana Park
- Dec 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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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8~41장에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셔서 던진 질문들이 무려 70가지 이상이다(1~4절이하).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지금까지 고난의 이유만을 물어왔던 욥에게 하나님은 왜 무수한 질문들로 답하실까?
여기에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 신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수사적 반어법’이라는 전문 용어로 명명하는데 실제적인 하나님의 의도는 욥을 당혹스럽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욥이 스스로 대답을 찾기 위한 배려하심이다. 다시 말하면 질문을 돌려준다는 것은 질문자 스스로가 자기의 대답을 찾아내기 위함이다.
그 실례 중 하나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헤롯당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마 22장):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이때 예수님은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게 한 후에 오히려 이렇게 반문하신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그리하여 그들의 입에서 스스로 답이 나오게 만드신다. 그들이 뭐라고 했을까?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마무리하신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것이 ‘수사적 반어법’이다.
하나님은 ‘내가 이런 불행을 당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항변하는 욥에게 눈을 들어 이 거대한 우주를 바라보고, 내가 묻는 질문에 답해보라고 하신다. 그 순간, 대우주 앞에선 욥은 자기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절감한다.
철학자 파스칼은 “이 광대한 우주의 무한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욥은 이렇게 고백한다(40:5절):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욥은 점점 깨닫기 시작한다. 38장 처음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라고 물으신 이후, 장엄하신 우주를 욥에게 보시며 수많은 질문을 하셨다. 그 후 40장에서 욥은 더 이상 할 말을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런 다음 결국에는 42장 3절에 이렇게 대답한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은 자신을 발견한다. 그 순간 우주의 중심이 바뀐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자신이 겪는 고난밖엔 볼 수 없었고,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질문들과 더불어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를 다시 보면서 그 중심에 계신 하나님을 본다.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펼쳐지고 운행됨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다. 그렇다. 하나님이 중심이다. 우주가 펼쳐질 때 그 자리에 욥은 없었다. 하나님께서 계셨던 것이다. 무려 70여 가지의 무수한 하나님의 질문들은 욥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고난뿐 아니라 우리가 겪는 수많은 문제들은 나 중심으로 풀면 답이 없다. 의문만 생긴다. 의심만 쌓인다. 고민만 깊어진다. 그러나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 중심으로 풀면 답이 있다. 풀리지 않을 것이 없고, 해결되지 않을 문제가 없으며, 비로소 희망이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선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이다. 부디 지혜로운 성도이기를 바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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