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2-2장] 회개와 기도 그리고 회복
- Dana Park
- Dec 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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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마지막 부분은 완전한 회복을 위한 결정적인 발판을 회개에 둔다. 욥은 회개를 통해서 가장 먼저 하나님과의 어긋난 관계를 완전히 회복한다(6절).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의 우매함에 대한 회개를 거듭 요구하신다(7-9절).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결국 하나님께서는 욥과 그의 친구들의 실수에 관하여 빠짐없이 회개할 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누구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들 스스로의 한계를 먼저 인정하고 화해를 요구하신다. 즉 인간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최우선적으로 시인하게 하시며, 그러한 약함에 대한 ‘상호적인 화해’를 하나님께서는 ‘회개’로 간주하신다.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나로부터의 회개와 상호적인 화해를 바탕으로 한 회개는 완전한 회복에 이르게 한다는 점이다.
욥기의 결론은 실제적으로 기도로 마무리 된다. 다시 말하면 욥의 완전한 회복은 ‘중보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10절).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이 부분에 욥기만의 신비스러움이 존재한다. 즉 욥기의 비밀이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을까? 지금까지 신학적, 신앙적, 감정적 원수로 생각했던 바로 그 친구들을 위해서 용서의 중보기도를 드려라 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복음서에 나타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중요한 것은 욥이 정말 그렇게 했을 때, 일어난 반응이다(10절 하반절). 이전 모든 소유보다 욥을 갑절로 회복시켜 주셨다. 이 말씀에 근거해 본다면, 고난 이후 우리의 삶에 갑절의 회복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난이 약해서인가? 아니다. 그것은 고난 속에서 참된 용서가 없었고, 그 용서를 위한 진실 된 기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가정에 고난이 왔을 때, 그 고난 속에서 원수같이 여기는 남편 혹은 아내를 위해서 진정한 용서의 기도를 해 보았는가? 원수 같은 자녀를 용서하는 진실된 기도를 해보았는가? 원수 같은 시어머니, 아니면 며느리를 용서하는 진정한 기도를 해보았는가? 이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머무는 그 고난의 자리에서 갑절의 회복의 역사는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
성경에 보면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어가던 스데반의 순교현장에서 그 스데반의 마지막 말은,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였다. 오로지 자신을 핍박하던 사람들의 용서를 위한 중보기도였다.
그랬더니 사도행전 저자는 바로 그 이후에 등장하는 한 인물을 이렇게 소개한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스데반의 용서를 향한 중보기도는 허공의 외침으로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도행전의 내용을 아는바와 같이 그 기도는 후일 사울이라는 한 사람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았을 뿐만 아니라 유대 중심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대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지게 된다. 갑절이 아니라 몇 백배의 다이나막한 복음 전파의 역사가 이루어졌고, 곳곳마다 완전한 부흥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그렇다. 회개와 진정한 용서의 기도는 완전하고도 위대한 회복을 낳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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